레오스 카락스의 변주된 인용:《홀리 모터스》, 《제목 없음》, 그리고 《나쁜 피》를 중심으로 (Variations on a Quotation: The Act of Quoting in Leos Carax’s Holy Motors, Sans Titre, and Mauvais Sang)

Below is my writing on three of Carax’s films–Holy Motors, Sans Titre,” and Mauvais Sang. No English version available, unfortunately (I wonder how it’d look on Google’s translator service… you’re welcome to try it).

I.

레오스 카락스의 전작에 나오는 인용구들의 범위와 양은 뿌리처럼 뻗어나가는 리좀 (rhizome)과 흡사하다. 그는 자신의 전작을 통틀어 영화와 문학 작품, 클래식과 팝송, 회화 뿐 만 아니라 심지어 무성 영화의 기법마저 인용한다. 인용하는 행위 자체를 중요시했던 누벨 바그 감독들의 정신을 그대로 물려받은 것이다. 놀랍게도 카락스의 인용 행위는 익숙하지만 완전히 새롭게 느껴지는 기묘한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한 대담에서 카락스는 인용하는 것을 질색한다고 말하는데, 1 그의 말을 풀어서 정리하자면 그는 지식을 쌓고 설파하려는 전형적인 인용 행위를 질색한다는 것이다.

카락스의 인용 행위가 독특한 이유는 패러디나 오마주의 방식, 자기반영성, 그리고 심지어 자전적 요소들까지 포함하는 ‘변주된 인용’이기 때문이다. ‘변주된 인용’은 전형적인 인용과는 다르게 여러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본래 인용구 자체를 변화시키거나 다양한 인용구들을 조합하여 새로운 맥락에 위치시키는 행위를 뜻한다. 이러한 카락스의 ‘변주된 인용’ 행위는 카락스의《홀리 모터스》(2012),<제목 없음>(1997), 그리고《나쁜 피》(1986)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II.

카락스의 《홀리 모터스》는 그를 어렴풋하게 알고 있던 이들에게 자신이 어떤 감독인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설명하는 대담에서 혼돈 (chaos)이라는 비유를 사용하는데, 실제로《홀리 모터스》를 보는 것은 천차만별의 인용구들이 혼돈 속에서 어우러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과 흡사하다.《홀리 모터스》의 서사적 흐름은 전혀 예측 불가능하고, 익숙하면서도 완전히 새롭다는 인상을 심어주기도 한다. 미술사학자 이나 블롬 (Ina Blom)의 말을 빌리자면, 《홀리 모터스》는 그 자체로서 “살아 있는” 작품인 것이다. 여기서 “살아 있다”는 것은 작품의 긍정적인 감정이나 분위기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유기적인 형식과 의미상 다층적인 성격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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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리 모터스》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우리가 보는 것은 남자 아이가 나체로 뜀박질을 하고, 보디빌더가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에티엔-줄스 마리의 영상이다. 이제는 통상적인 관례처럼 여겨지는 영상 이전의 음성의 출현, 즉 음성의 우월적인 위치는《홀리 모터스》에서는 성립되지 않는다. 이어서 좀비처럼 앉아있는 관객의 어두운 모습이 보이고, 이 관객이 보고 있는 영상이 필름이라는 것을 시사하고 있는 사운드트랙의 잡음이 들린다. 곧이어 제목 《홀리 모터스》에 걸맞게 자동차의 경적 소리가 들리고 영화의 타이틀이 좀비 같은 관객 위에 겹쳐서 뜬다. 그리고 들리는 남자의 외침, 총소리, 그리고 여객선의 기적 소리. 영화는 2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실체를 파악할 수 없는 존재의 끝, 그리고 다른 존재의 시작을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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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해진 기적 소리가 계속 들리는 와중 카메라는 호텔 방이라는 일시적인 공간으로 옮긴다. 잠에서 깨어난 몽상가/카락스 감독은 자신의 애완견이 누워있는 침대에서 일어나 담배를 입에 문 채 호텔 방을 걸어 다니고, 도시의 야경이 펼쳐져 있는 창문 앞에 선다. 도시 배후에는 별처럼 빛나는 비행기가 착륙하고 있고, 창문 옆 물결이 일고 있는 노트북 화면에는 익명의 얼굴이 떠있다. 몽상가는 메마른 나무들이 그려져 있는 벽 앞에 멈춰, 벽을 어루만지기 시작하고 구멍이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는 어디선가 나타난 길쭉한 양의 열쇠를 자신의 가운데 손가락에 낀 채 힘겹게 벽을 연다. 벽의 너머에는 외설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깜빡깜빡하는 빨간 불빛이 있는 출구통로가 있다. 몽상가는 이 통로를 지나 좀비 같은 관객이 있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의 영화관으로 향한다. 2층 난간에 서있는 몽상가. 아래층의 영화관 통로에는 기저귀를 찬 아기, 그리고 불길한 분위기의 어두움 속에서 형상을 알아보기 힘든 검은 개 한 마리가 지나간다. 카메라는 로우 앵글로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몽상가를 보여준다. 뒤이어 우리는 원형 모양의 창문 앞에 앉아 고즈넉이 바깥을 내다보고 있는 여자 아이/카락스의 딸을 보게 된다. 카메라는 이 여자 아이로부터 서서히 줌아웃하기 시작하고, 이 시점에서 영화의 서곡은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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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신비로운 서곡은 카락스 전작의 대표적 요소들을 담고 있다. 돌연 나타나는 아기는 《나쁜 피》에서 볼 수 있고, 빛나는 도시의 야광과 다양한 동물들은 그의 전작에서 볼 수 있다.2 창문 옆의 컴퓨터 화면에 나타나는 익명의 얼굴이 누구인지 우리로서는 도무지 알 길이 없는데, 이러한 출처 모를 인용구의 등장도 카락스 전작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무엇보다도《홀리 모터스》는 영화 매체의 근원이라고 볼 수 있는 크로노포토그라피로 시작한다. 카락스는 자신의 전작에서 무성 영화의 기법을 사용하고 수많은 무성 영화 작품들을 인용해왔지만, 크로노포토그라피를 직접적으로 인용하는 것은《홀리 모터스》가 그의 장편 작품으로서는 처음이다. 신체 (身體)의 운동 행위를 중요시하는 카락스에게 서사적 요소가 결부된 크로노포토그라피는 영화의 본질적인 존재 이유를 상기시키는 하나의 인용 장치이자 시적 소재, 그리고 영화의 리듬적 요소이다. 실제로 카락스는《까이에 뒤 시네마》에서 비평가로 일했을 적 실베스터 스탤론의 데뷔 작품《챔피언》(Paradise Alley, 1978)에 찬사를 보냈었고,《씨네 21》과의 대담에서는 자신이 13살 때 TV에서 방영했던 무하마드 알리와 조 프레이저의 복싱경기 대결을 본 것을 회상하였다. 3 그런 그가 무용가로서 활동했던 드니 라방 같은 배우들을 통해 신체의 운동 행위에 대해 찬사를 보냄으로써 크로노포토그라피의 정신을 계속 이어온 것은 그리 놀랍지 않다.

III.

《홀리 모터스》의 서곡은 ‘영화의 죽음’에 대한 명상이기도 하다. 총소리는 (필름) 영화의 죽음을 예고하고, 여객선의 기적 소리는 새로운 시작을 알린다. 영화관 아래층에서 아장아장 걷는 아기와 어둠 속에서 나타나는 검은 개는 이 영화관에 생명과 죽음이 공존하고 있다고 넌지시 알려준다. 이 서곡을 신비롭게 만드는 중심 요소는 하나의 변주된 인용인데, 인용 대상은 바로 마야 데렌의 아방가르드 작품《오후의 올가미》(Meshes of the Afternoon, 1943)에서 여성이 창밖을 바라보는 숏이다. 영화사의 수많은 다른 작품들도 여자 아이가 창문에 기대며 바깥을 바라보는 비슷한 숏들을 담고 있는데, 왜 굳이 데렌 작품의 숏을 인용 대상으로 봐야 하는지 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카락스와 데렌은 둘 다 형식적인 실험들을 통해 영화 매체의 가능성을 모색한 감독들 인데다가,《오후의 올가미》와《홀리 모터스》가 공유하고 있는 꿈, 열쇠, 창문, 바다, 그리고 열려있는 틈새와 구멍 같은 모티프들은 두 작품 사이의 연결고리를 더욱 강화시키는 요소다. 게다가 이 두 작품들은 감독 자신이 작품 안에 직접 출연하는 자기반영성을 드러내고 있는 까닭에 더욱 비교 대상으로서 적합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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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락스가 영화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오후의 올가미》의 숏을 독특한 방식으로 인용했다는 전제 조건 하에 두 작품의 유사한 숏들을 비교해 보자. 2초 남짓밖에 안 되는《오후의 올가미》의 짧은 숏 안에서 여 주인공은 시선을 아래로 향한 채 자신의 분신이 ‘거울 인간’을 쫓아 달려가고 있는 모습을 바라본다. 이에 반해《홀리 모터스》의 여자 아이는 비스듬히 위를 향해, 마치 어떤 진실을 알고 있는 것처럼 어린 아이 특유의 시선으로 창 밖을 바라본다. 섬세한 모습으로 창문에 기대며 아래를 바라보고 있는 여성의 모습이 뒤바뀐 자세로 위를 바라보고 있는 여자 아이의 모습으로 대체된 것이다. 카락스는 이러한 변주된 인용을 통해 지금 우리에게도 데렌의 작품 같이 영화사 (映畫史) 내 파열의 순간이 또 다른 형태로 일어나야 한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이 새로운 파열의 순간은 성숙한 여성이 아닌 위를 바라보고 있는 여자 아이를 통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반세기 지나서도《오후의 올가미》의 짧은 숏이 영화사에서 기억에 남을 만한 숏으로 인지되는 이유는 주인공, 즉 데렌의 시선에 종잡을 수 없는 미묘한 감정이 실려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여자 아이의 시선에도 비슷하게 미묘한 감정이 묻어있다. 몽상가/카락스가 공동묘지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어두운 영화관 안에서 희망을 발견한 것이라고 해석하기 어려운 이유는 카락스가 절대로 단순명료한 비유 또는 사유 방식을 택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카락스의 전작은 죽음과 탄생, 주체할 수 없는 운동과 정체, 꿈과 현실 같은 통상적으로 상반되는 개념과 감정들을 오가며, 이들 사이의 지점에서 새로운 감정과 사유로 이어지는 간극을 발견한다. 그렇기에 이 장면을 단순히 ‘어둠 속 희망의 발견’이라고 쉽게 단정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이 장면에서 여자 아이의 모습이 자아내는 것은 ‘희망’보다는 ‘기대’라는 좀 더 중립적인 감정이다. 여자 아이의 모습, 커다란 원형 창문, 백지 상태 (tabula rasa) 와 순수함을 연상시키는 하얀 벽, 그리고 무언가 열리는 느낌을 주는 카메라의 줌아웃은 모두 영화가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들은 무한하다고 시사하고 있다. 서곡은 이처럼 열려 있는 형태로 끝맺는다.

IV.

세바스찬:
내 운명의 별에는 검은 구름이 껴 있으니.
나의 불운이 당신에게까지 미칠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여기서 작별을 합시다. 4

–셰익스피어, 『십이야』제2막 제1장

셰익스피어는 전작을 통해 천체 (天體)를 인간의 비운과 지상의 삼라만상을 반영하는 하나의 신체 (身體)로 다루었다. 『리처드 2세』에서 왕의 자리를 빼앗기는 비극적인 상황에 처한 리처드 2세는 자신의 운명을 지는 해에 비유하였고, 『햄릿』의 도입 부분에서 호레이쇼는 덴마크에 닥칠 위기를 로마의 몰락에 비교하며 천체를 비유 대상으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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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락스는 허먼 멜빌, 질 들뢰즈와 더불어 자신의 또 다른 정신적 지주인 셰익스피어를 통해 천체 비유를 인용하지만, 그의 작품《홀리 모터스》에서 비유의 대상은 천체에서 모션 캡쳐 센서와 도시의 불빛으로 변주된다. 변주된 인용은 세 차례로 나타난다. 작품의 서곡 부분에서 라방은 어두운 호텔 방의 창밖을 내다보는데, 파리의 불빛은 마치 천체처럼 빛나고 있다. 착륙하는 비행기는 정말 별처럼 빛나고 있는데, 자신의 비유를 강조하기 위해 포스트 프로덕션 단계에서 디지털로 처리한 것이 틀림없다. 두 번째로 모션 캡쳐 스턴트맨을 연기하는 라방이 어두운 방에서 곡예를 부릴 때, 그의 신체에 부착된 모션 캡쳐 센서들은 별처럼 발광한다. 라방의 신체 자체가 하나의 천체처럼 움직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홀리 모터스》의 후반부에서 자크 데리다와 흡사한 모습으로 분장한 라방이 임종을 맞이하는 노인을 연기하기 위해 호텔 앞에 멈추는 순간, 어두운 리무진 안에 비춰지는 호텔 로비의 불빛도 마치 하나의 천체와 같은 형상을 띤다. 카락스는 자신의 비유를 강조하기 위해 라방이 리무진에서 내리고 나서도 리무진 안에서 보이는 호텔 로비의 불빛 모습을 8초 간 유지시킨다.

첫 번째와 세 번째 장면에서 나타나는 파리의 불빛은 영화와 인간의 비운을 예고한다. 두 번째 장면이 특별한 이유는 천체의 비유가 신체의 비유와 결부되었기 때문이다. 신체가 모든 것을 드러내고 있으니, 하늘을 바라 볼 필요가 없다. 『햄릿』에서 호레이쇼가 말한 것처럼 천체와 신체는 같이 어우러져 지상의 슬픈 운명을 예견하게 된 것이다. 5 그래서 일까. 라방의 움직임에는 우아함과 동시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애절함이 느껴진다.

V.

《홀리 모터스》에서 변주된 인용은 언어적인 차원에서도 이루어진다. 작품 안에서 드니 라방이 네 번째로 연기하는 역할은 카락스의 단편 <괴인> (2008)에서 동경의 거리를 활보하며 일본인들을 경악하게 만든 미치광이 메르드 (Merde) 이다. 배설물과 똥을 의미하는 라틴어의 ‘메르다’ (merda)에서 유래한 불어 단어 ‘메르드’ (merde)의 본래 사전적인 의미는 ‘제기랄’이다. 하지만 실제로 ‘메르드’가 쓰이는 맥락과 의미는 다양하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전보들은 ‘행운을 빈다’는 뜻으로 ‘너에게 메르드를 말한다’ (je vous dis merde) 라는 표현을 썼고, 뉴욕 발레 댄서들도 똑같은 뜻으로 서로에게 ‘메르드’라고 말한 기록이 남아있다. 6 똥과 배설물이라는 본래의 의미가 변형되어 반어적으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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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락스 작품 안에서도 ‘메르드’라는 명칭은 독특한 방식으로 변주된다.《홀리 모터스》에서 ‘메르드’는 정확히 세 차례 발화된다. 첫 번째는 라방이 미치광이 메르드를 연기하기 직전, 두 번째는 교회에서 음악 행진이 벌어지는 시점, 그리고 마지막인 세 번째는 ‘얼굴에 모반 (母斑)이 있는 남자’ (미셸 피콜리)가 리무진에서 라방과 대화를 나누는 시점에서 발화된다. 카락스는 ‘메르드’라는 명칭이 가지고 있는 여러 의미를 유희적으로 사용한다. 첫 번째 발화에서 라방이 ‘메르드’라고 말하는 경우에는 ‘메르드’라는 가상 인물과 사전적인 의미인 욕설을 지칭한다. 마지막 세 번째 발화에서 라방은 ‘모반이 있는 남자’의 근심 어린 말에 화가 나 ‘메르드’라고 말하는데, 이것이 욕설을 의미하는 것은 명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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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흥미로운 경우인 두 번째 발화는《홀리 모터스》의 특이한 시퀀스인 ‘막간’ (Entracte) 에서 일어난다. 라방이 교회 안으로 들어가 아코디언을 켜는 숏으로 ‘막간’은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솔로이스트인 라방이 부드러운 톤으로 곡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드럼과 아코디언 등 여러 악기를 든 사람들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라방의 뒤를 이어 흥겹게 연주하기 시작한다. ‘메르드’의 발화는 음악의 재현부 직전에 나오는데, 라방은 반주자들에게 “3, 12, 메르드!” (“Trois, douze, merde!”)라고 외친다. 정상적이라면 “하나, 둘, 셋”이라고 외쳐야 하는데, 대신 “3, 12, 메르드”라고 외치는 것이다. 굳이 다른 숫자들 말고 ‘3’과 ‘12,’ 그리고 ‘메르드’를 외친 이유는 왜일까. 우리는 의미와 무의미 사이에 위치해 있는 이 기호들이 우리로 하여금 미궁 속에 빠져들게 만드는 장치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 숫자들과 ‘메르드’가 왜 나왔는지에 대해 궁금해 하지 않을 수 없다. 굳이 이유를 찾아보려 하자면, ‘3’은 카락스의 전작에서 부모가 가진 자식의 숫자를 의미한다.《나쁜 피》에서 주인공 알렉스를 체포하려 하는 앙또넹 무쉐뜨 서장은 자신에게 세 명의 자식들이 있는데 모두 자신에게 연락조차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7 그리고《홀리 모터스》에서 라방이 연기하는 ‘가장’ (家長) 에게는 카락스의 실제 딸들과 이름이 일치하는 플로랑스, 오드, 루스라는 세 딸들이 있다. 그 다음으로 음악 행진에서 ‘12’라는 숫자가 발화되는 이유는 불확실하지만, 아마 크게 중요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 ‘메르드’가 가지고 있는 의미는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욕설 또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음악적 리듬의 요소로 볼 수 있다. ‘메르드’라는 단어가 새로운 맥락 속에서 욕설 말고도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되는 셈이다. 이렇게 하여 세 차례 발화되는 ‘메르드’는 맥락에 따라서 의미가 변주된다.

그런데 하나의 반전이 있다. 카락스의 작품 <괴인>을 이미 본 관객들은 ‘메르드’라는 단어를 하나의 인용구로 생각하게 되어, 영화 속에서 어떤 상황이 펼쳐져도 미치광이 ‘메르드’를 상기하게 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괴인>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두 번째와 세 번째 발화 역시 한 가상 인물로서의 ‘메르드’라는 의미를 추가적으로 지니게 된다. 요컨대 ‘메르드’라는 단어가 지닌 의미가 본래의 사전적인 의미를 떠나 관객에 따라 다층적인 의미를 지니게 된다.《홀리 모터스》에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는 ‘연기자’의 범주에는 영화배우뿐만 아니라 언어까지 포함되는 것이다.

VI.

<제목 없음> (Sans Titre, 1997)은 50주년을 맞이한 칸느 영화제의 요청에 의해 만들어진 9분도 넘지 않는 단편 작품이지만, 이 작품에서 조차 변주된 인용을 볼 수 있다. 작품의 핵심적인 장면은 중간 지점에서 시작된다. 이 장면은 킹 비도르의《군중》, 찰스 로턴의《사냥꾼의 밤》, 카락스의《폴라 X》(1999), 카락스의 홈 비디오와 사진, 그리고 카락스 자신의 현재 모습을 담은 추가적인 영상을 시적으로 편집한 콜라주이다. 콜라주에서 사용되는 여러 인용구들의 연결 고리는 ‘남매’이다. 카락스가 어린 시절 자신의 누이와 다정하게 노는 모습,《군중》의 남매 중 여자 아이가 교통사고로 죽임을 당하는 장면,《사냥꾼의 밤》의 남매인 펄과 존이 남매의 모친을 살해한 해리 파웰로부터 도망가기 위해 강가에서 배를 젓는 장면, 《폴라 X》에서 주인공 피에르의 누이라고 주장하는 이사벨이 숲 속에 서있는 모습, 그리고 카락스 자신이 남매의 형상이 으스스하게 그려져 있는 침대에 엎드린 자세로 누워 있는 모습이 모두 교차 편집되어 진행된다. 이와 동시에 마일스 데이비스의 음악 “메들리: 장 피에르/당신은 체포됐다/그리고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사냥꾼의 밤》의 남매가 부르는 자장가 “옛날 옛적에 어여쁜 파리가 있었네”가 흘러나온다. 이러한 설명이 산만한 콜라주 장면일 것이라는 인상을 줄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카락스는 영화와 음악 인용구들의 조합을 통해 서정적인 콜라주를 만들어 낸다. 이 콜라주에서 인용구들의 변주는 다름 아니라 소리를 통해 이루어진다.《사냥꾼의 밤》에서 남매가 부르는 자장가는 비도르 작품의 마지막 장면에 겹쳐 들리면서, 여자 아이가 죽임을 당하는 장면의 멜로드라마적 성격이 향수적 성격으로 탈바꿈한다. 그리고 조용히 시작하는 마일스 데이비스의 음악은 나머지 영상들을 연결시킴으로써 홈비디오/사진과 영화, 즉 사실과 허구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어 버린다. 카락스는 <제목 없음>에서 변주된 인용을 통해 영화는 삶이자 삶은 곧 영화라는 미메시스적 사실을 투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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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크레딧이 내려간 이후에도 변주된 인용은 계속된다. 크레딧이 내려간 이후 군중 속에서 주인공이 아내와 함께 웃고 있는 비도르 작품의 마지막 장면이 나오는데, 카락스는 칼 데이비스가 작곡한《군중》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은 그대로 유지한 채, 여러 남성들의 큰 웃음 소리, 그리고 알 수 없는 말을 해가며 흐느끼는 여성의 목소리를 추가로 얹는다. 이 새로운 음성들은 카락스가 직접 제작한 게 아니고 다른 작품들로부터 따온 인용구일 가능성도 크다. 즉, 인용구인 영상 위에 인용구인 음성들을 얹어버린 것이다. 이러한 변주된 인용을 통해 카락스는 우리로 하여금 ‘영화 관객’이라는 군중에 대해 복잡한 감정을 갖게 만든다. 남성들의 웃음소리는 긍정적인 의미에서 폭소, 또는 부정적인 의미에서 비웃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여성의 흐느끼는 목소리는 감정을 종잡기가 쉽지 않은데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이렇게 감정적으로 애매모호한 소리들을 중첩시키고《군중》의 마지막 장면에 얹어놓음으로써, 우리는 긍정적이지도 않고 부정적이지도 않은 애매한 심리 상태에 빠지게 된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이러한 심리 상태에 빠지게 됨으로써, 영화 매체의 미래를 안고 있는 ‘영화 관객’이라는 군중에 대해 어떠한 일방적인 감정도 갖지 않은 채 거리를 두고 사색할 수 있게 된다.

VII.

카락스의 초기 작품《나쁜 피》에서 카락스 전작의 대표적 요소들을 어김없이 볼 수 있다. 작품 내에서 프로코피예프의 <로미오와 줄리엣>, 벤저민 브리튼의 <프랭크 브리지 주제에 의한 변주곡> 제 8변주, 그리고 데이빗 보위의 <모던 러브> 같은 다양한 클래식과 팝 음악이 함께 어우러져 사용된다. 주인공 알렉스 르 보강 (드니 라방)의 상처난 손의 숏이 밤하늘의 별들을 보여주는 숏으로 이어져 주인공의 비운을 드러내는 편집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홀리 모터스》에서 변주되어 사용되는 셰익스피어적 비유법이다. 작품 속 인물들이 사용하는 “무성 영화 배우처럼 촉촉 젖은 입술” 같은 레퍼런스적 표현들, 리즈 (줄리 델피)가 알렉스에게 전화를 거는 흑백 장면, 재빠른 편집, 그리고 마치 해방된 것처럼 자유로운 카메라의 움직임은《나쁜 피》가 무성 영화의 정신과 더불어 누벨 바그의 실험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을 반영한다. ‘총과 여자라는 요소들만 있으면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고다르의 말을 재치 있게 변주하는《나쁜 피》는 “1980년대 프랑스영화는 남긴 게 하나도 없다”고 혹평한 영화비평가 세르주 다네 (Serge Daney) 조차 틀릴 때가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작품이다.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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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피》에서 변주된 인용은 장르, 그리고 연기를 통해 일어난다. 줄거리만 봤을 때《나쁜 피》는 하이스트 (heist), 로맨스, 그리고 뮤지컬의 요소들이 섞인 혼합 장르물이다. 그렇다고 해서 장르의 법칙이 무시되는 것은 아니다. 작품 내에서 추격전과 총격전을 통해 하이스트는 이루어지고, 알렉스와 리즈 사이의 관계는 전형적인 로맨스 줄거리를 따라가며 발전한다. 하지만 작품 내에서 세 장르에 어울리지 않는 요소들이 나타나기도 한다.《나쁜 피》의 서곡인 거위의 모습을 보여주는 영상, 그리고 거미줄과 천체의 숏들 같이 장르에 어울리지 않는 요소들은 영화의 서정성을 고조시킨다. 로맨스와 뮤지컬 요소들도 평범하게 사용되지 않는다. 알렉스와 안나는 면도용 크림을 서로에게 뿌려대며 장난치는 남매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서로를 부끄러워하는 연인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처럼 《나쁜 피》에서 두 인물 사이의 관계는 이성과 남매 관계 사이를 줄타기하고 있다. 뮤지컬 요소의 사용도 눈여겨볼 만하다. 영화의 중간 부분에서 알렉스는 안나에게 라디오를 틀기만 하면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던 음악이 언제나 나온다”고 말하며, 라디오에서 나오는 데이빗 보위의 <모던 러브>에 리듬을 맞추며 거리에서 뛰고 춤추기 시작한다. 이 장면에서 인물들이 직접 노래를 부르지는 않지만, 라방의 춤 장면은 카타르시스 효과를 내는 뮤지컬 장면과 다를 바 없다. 다만 디제시스/논디제시스적인 요소들, 즉 줄거리와 춤추는 장면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져 라방의 춤이 시작한다는 명확한 신호가 없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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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나쁜 피》의 중심에는 드니 라방이라는 배우의 연기가 있다. 이 작품에서 라방은 찰리 채플린의 우스꽝스러움, 실베스터 스탤론의 마초주의, 제임스 딘의 반항기, 리 마빈의 카리스마, 그리고 다름 아닌 데이빗 보위의 표정과 즉흥적인 움직임을 반영하는 실로 경이로운 연기를 펼친다 (이에 더해 라방에게는《쥬랜더》(2001)에서 데이빗 보위와 함께 호흡을 맞춘 벤 스틸러의 모습까지 겹친다.) 라방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데이빗 보위의 <모던 러브>의 리듬에 맞추며 춤출 때, 우리는 라방이 단지 데이빗 보위라는 팝 아이콘을 흉내 내고 있다 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젊음을 찬양하는 이 장면이 특별한 이유는 데이빗 보위라는 팝 아이콘의 음악이 흘러나오는 동시에 라방이 자신의 독특한 신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인용되고 있는 음악을 철저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데 있다. 한마디로 라방은 다양한 페르소나들의 변주된 인용을 통해 결국에는 모두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버리는 셈이다. 엔진에 진동을 거는 듯한 8/6박자의 일렉트로닉 기타 리프, 드럼의 찰진 울림, 그리고 데이빗 보위의 목소리에 자신의 몸을 맡긴 채, 마치 굳어져 버린 내장이 터져버릴 것 같은 시늉을 내고 거리에서 담배를 푹푹 피워대고 팔을 휘두르고 발레 댄서 같은 움직임을 보이고 재주넘기를 하고 목적지 없이 뛰고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참을 수 없는 희열을 느끼며 춤추는 라방. 이런 주체할 수 없는 운동 행위가 펼쳐지는 순간 우리는 어디까지가 데이빗 보위이고 어디까지가 라방인지 생각할 겨를이 없다. 단지 우리도 라방과 함께 데이빗 보위의 음악에 몸을 맡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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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엣 비노쉬와 줄리 델피의 연기도 마찬가지이다. 비노쉬의 연기는 안나 카리나의 우는 표정과 아역 배우들의 순진함을 연상시키고, 델피의 연기는 릴리언 기쉬의 순수함을 연상시킨다. 그런데 물론 비노쉬는 안나 카리나가 아니며, 델피는 릴리언 기쉬가 아니고, 라방은 찰리 채플린이 아니다. 분명 이들이 유명 배우들의 페르소나를 인용하지만, 이들의 연기들을 단순한 인용이나 영감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나도 즉흥적이고 사실적이며 자발적이다. 비노쉬, 델피, 그리고 라방은 페르소나들의 변주된 인용을 통해 자신들의 신체적 개성을 내세워 영화의 마술적 순간들을 가능케 한다.

VIII.

수많은 변주된 인용들을 사용하는 카락스의 작품들, 특히 그 중《홀리 모터스》는 영화만을 위한 영화, 혹은 시네필 만을 위한 영화인 것일까? 절대로 아니다. 샐리 포터의《올란도》(1992) 처럼《홀리 모터스》는 자기반영적으로 영화라는 매체에 대해 성찰하지만, 이 작품들이 단순히 영화에 관한 영화인 것은 아니다. 카락스는 미국의 독립영화 전문 잡지《필름메이커》에 실린 대담에서《홀리 모터스》에 대해 다음과 같이 피력 한다: “물론 영화라는 주제는《홀리 모터스》의 한 측면일 뿐입니다. 영화에 대한, 그리고 영화의 디지털화에 대한 작품도 아닙니다. 누가 굳이 그런 작품을 보려 할까요? 저는《홀리 모터스》를 현 시대 살아있다는 것의 경험, 즉 이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경험에 대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작품은 돌연변이 같은 이 세상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것이어서, 작품은 슬프거나 비참하지만은 않습니다. 혹은, 슬프면서 비참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웃기기도 하고 기쁨에 가득 차 있기도 합니다. 당신이 운이 좋으면 이런 면모를 볼 수 있는 것이죠. 하지만 물론 제 작품의 언어는 ‘영화’입니다.” 9

《필름메이커》의 대담에서 대두되고 있는 단어는 ‘돌연변이’이다. 돌연변이 같이 급변하는 세상에는 이 세상을 이해하고 살아가려는 현 세대, 그리고 영화라는 매체가 존재한다. 물론 영화의 역사 자체가 변천사이므로, 지금 부각되고 있는 문제인 ‘디지털화’가 영화를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필름의 죽음이 영화의 죽음을 초래하지는 않을 것이고, 영화는 어떻게든 살아남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의 디지털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가운데 영화가 스스로 재창조하며 “영화 본질의 원초적인 힘,” 그리고 무성 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신의 눈길”을 되찾기 위해서는 무한한 용기와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10

지금 영화는 알렉상드르 오스카 뒤퐁/레오스 카락스 (Alex Christophe Dupont/Leos Carax) 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다.

IX.

당신은 인생을 살며 꿈을 꿈꿨네.
그 꿈은 왠지 모르겠지만 영화와 접해 있었네.
당신은 눈을 반 쯤 감은 채
천국이라는 인생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였네.
테크니컬러가 희미해지며 나는 퍼레이드를
마치 싸구려 숙소, 비밥 세레나데 같은 퍼레이드를 꿈꾸네.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은 있어야 한다네.11

–조 스트러머 앤 더 메스칼레로스, “무너지는 대낮 퍼레이드” (Joe Strummer and the Mescaleros, “Ramshackle Day Parade”)

영화는 무엇인가. 아무것도 아니다. 무엇을 원하는가. 모든 것을.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무언가를. 12

–장-뤽 고다르, 《영화사》 (Histoire(s) du cinéma, 1998)

*

주석 

1. 원문: “The only conscious references, I mean, I hate references, but the only time I knew I was referencing one of my previous films was in the motion capture sequence, when Denis is running on the treadmill, which is in reference to my second film Mauvais sang with the David Bowie song.” 다음 웹사이트를 참고하였음: http://www.hammertonail.com/interviews/a-conversation-with-leos-carax-holy-motors/

(Hall, Tom. “A Conversation with Leos Carax (Holy Motors).” 2012/10/17.)

2. 카락스는 심지어 영국의 록밴드 <뉴 오더>의 뮤직비디오 ‘크리스탈’을 자신의 애완동물이 출현하는 홈 비디오로 편집하기도 하였다.

3. 다음 두 웹사이트들을 참고하였음:

http://sensesofcinema.com/2006/great-directors/carax/ (Bañuz, Christian Checa. “Leos Carax.” 2006년 11월.)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58663 (김성훈. “[spot] 드니 라방 같은 괴물이 또 어딨나”. 2009/11/18)

4. 신정옥 옮김. p. 49. 원문: “My stars shine darkly over

me: the malignancy of my fate might perhaps

distemper yours; therefore I shall crave of you your

leave that I may bear my evils alone […]”

5. 원문: “Have heaven and earth together demonstrated/Unto our climatures and countrymen.” (제1막 제1장)

6. 참고 웹사이트:

http://www.barrypopik.com/index.php/new_york_city/entry/merde_theatrical_saying_meaning_good_luck

(Popik, Barry. “Merde!” 2012/1/29)

7. 불행하게도 한국에서 출시된 DVD에서 “모두 셋을 잡았지만 아무도 전화받지 않았어”라는 문맥상 의미가 맞지 않는 자막이 나온다.

8. 참고 웹사이트: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58663 (김성훈. “[spot] 드니 라방 같은 괴물이 또 어딨나”. 2009/11/18)

9. 필자의 번역. 원문: “Yeah, and [the subject of cinema] is only one aspect [of the film], obviously. I mean, it’s not a film about cinema, or about digital. Who would go and see that, you know? I really think of it as a film about the experience of being alive nowadays, alive in this world. We talk about this mutant world, so it’s not sad, it’s not tragic. Or, it is sad and tragic, but it’s also laughable and joyful in a way, if you’re lucky enough. But obviously, cinema is the language of the film. I think it’s the language of all my films, you know? I’m not a kid who comes from comics or from commercials. I didn’t study film — I started making movies at 18, and that was the time I was discovering cinema.”

참고 웹사이트: http://filmmakermagazine.com/54957-leos-carax-holy-motors/ (Hall, Tom. “A Conversation with Leos Carax (Holy Motors).” 2012/10/22.)

10. 참고 웹사이트: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72636 (이 기준. “[클로즈 업] 영화의 원초적 힘을 되찾고 싶다”. 2013/2/19.)

11. 제목과 노래 둘 다 필자의 번역. 원문:

“All your life dreamed a dream
Somehow connected with the silver screen
With half closed eyes you realize
Love in the life, that is paradise
In a technicolour fade, I dream a parade
Like some flop house, bop house serenade
Every dog must have his day.”

12. 필자의 번역. 원문: “Qu’est-ce que c’est le cinéma. Rien. Que veut-il. Tout. Que peut-il. Quel/que chose.” (“3A: La monnaie de l’absolu”)

*주석에 표기되어 있지 않은 원고 내 번역 (노래 제목, 대사 등)은 필자에 의해 작성됨.

 *

참고 작품

Carax, Leos. 《소년, 소녀를 만나다》 (Boy Meets Girl). 1984.
–. 《나쁜 피》 (Mauvais Sang). 1986.
–. 《퐁네프의 연인들》 (Les amants du Pont-Neuf). 1991.
–. <제목 없음> (“Sans titre”). 1997.
–. 《폴라 X》 (Pola X). 1999.
–. <크라스탈> (“Crystal”, 뮤직비디오). 2005.
–. <내 마지막 순간> (“My Last Minute”). 2006.
–. 《도쿄!》중 <메르드> (“Merde” de Tokyo!). 2008.
–. 《42 원 드림 러쉬》중 <네이키드 아이즈> (“Naked Eyes” de 42 One Dream Rush). 2009.
–.《홀리 모터스》 (Holy Motors). 2012.
Deren, Maya. 《오후의 올가미》(Meshes of the Afternoon). 1943.
Godard, Jean-Luc.《영화사》(Histoire(s) du cinéma). 1998.
Laughton, Charles.《사냥꾼의 밤》(The Night of the Hunter). 1955.
Potter, Sally.《올란도》 (Orlando). 1992.
Stiller, Ben. 《쥬랜더》(Zoolander). 2001.
Vidor, King. 《군중》 (The Crowd).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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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Favorite Films This Year (올해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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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urprising number of films that I’ve (re)discovered this year were products of digital cinema. I have only good memories from sharing, watching, and discussing these films with my closest friends, acquaintances, and strangers. The list’s roughly in order of preference:

1. Histoire(s) du cinéma. JLG. 1998. (screened at Cinémathèque Seoul)

JLG declares that cinema is dead. And yet, we see something new in its disappearance.

2. Persona. Ingmar Bergman. 1966. (ECC)

Watching it multiple times (four or five, I believe, at Ewha Women’s University) made me appreciate it more deeply each time. Films being made today seem so unambitious and tedious in comparison.

3. Holy Motors. Leos Carax. 2012.

Cinema as life, and life as cinema.

4. Mauvais Sang. Leos Carax. 1986.

Modern love never looked so youthful and vibrant on the screen. Denis Lavant makes it all possible.

5. Shirley: Visions of Reality. Gustav Deutsch. 2013. (CGV Apgu)

Deutsch’s work is far more than an interpretation of Edward Hopper’s paintings. It reveals fictional and mysterious qualities of Hopper’s works in brilliant and humorous ways, while reminding us that we’re watching a film. Its usage of voice-over narration could have been better, but I’d like to err on the side of being overly enthusiastic about this film until my second viewing.

6. L’étrange couleur des larmes de ton corps. Hélène Cattet and Bruno Forzani. 2013. (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Expect mysterious phone calls, unexplained torture, obscure dialogues, orgasm induced by surveillance camera, creepy old lady (and guy).

7. Cinéma Metaphysique: No. 2, 3, and 4. Nam June Paik. 1967-72. (NJP Art Center)

Paik’s humorous gestures, making it both hilarious and profound, won me over. A stroke of genius.

8. Being Two Isn’t Easy. Ichikawa Kon. 1964. (Korean Film Archive’s KOFA)

The camera movement in Ichikawa’s film, especially towards the end, is pure poetry.

9. To Be or Not to Be. Ernst Lubitsch. 1942. (Cinémathèque Seoul/on blu-ray)

As much as I appreciate other cinematic adaptations of Shakespeare, this one probably comes the closest in fully capturing Shakespeare’s penchant for mistaken identity, romantic jealousy, and ambiguity.

10. The Eclipse. Conor McPherson. 2009. (ECC)

McPherson, who’s excellent as both a playwrights and a filmmaker, comes up with a film that jolts you out of your seats, and then puts you in tears with beautiful shots of Ireland’s landscapes. And there’s also Ciarán Hinds… enough said.

Runner-ups include (and there are many):

Un héros très discret (Jacques Audiard, 1996/IPH screening), Liberté et Patrie (JLG/Anne-Marie Miéville, 2002/Cinémathèque Seoul), Days of Being Wild (Wong Kar-wai, 1990/CGV Shincheon), High and Low (Kurosawa Akira, 1963/Cinémathèque Seoul), The Master (P.T. Anderson, 2012/Plaza Frontenac Cinema @ St. Louis), World on a Wire (R.W. Fassbinder, 1973/KOFA), Snowpiecer (Bong Joon-ho, 2013/BIFF), The Cook, the Thief, His Wife and Her Lover (P. Greenaway, 1989), Seopyeonje (Im Kwon-taek, 1993/BIFF), Avatar (J. Cameron, 2009), Gentlemen Prefer Blondes (Howard Hawks, 1953/on blu-ray), Blowjob (Andy Warhol, 1964)

An entracte for everyone to relax and celebrate New Year’s Eve:

P.S.

Films I really wish I had not seen:

1. Pilseon 2 (필선 2). Ahn Byeong-ki. 2013. (Bucheon Film Fest)

2. The Story of an Old WomanAleksey Gorlov. 2013. (BIFF)

3. Cinema Paradiso (international version). Giuseppe Tornatore. 1988. (CGV Ori)

4. The Face You Deserve. Miguel Gomes.  2004. The only film from this year that I couldn’t bear watching until the end. (Cinémathèque Seoul)

5. Stoker. Park Chan-wook. 2013. (somewhere in Chicago with a friend from Normandy)

Overrated film of the year: A. Cuaron’s Gravity.

…and a host of student films, including mine, that filled me with disgust and made me want to run out of the screening ro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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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BIFF) Redu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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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managed to see the following works at this year’s BIFF (2013):

1. Vara / 2. The Book / 3. Tomogui (도모구이) / 4. The Story of an Old Woman / 5. The Strange Color of Your Body’s Tears / 6. Nagima (had to come out in the middle) / 7. The X / 8. Blue is the Warmest Color / 9. The Nightingale / 10. The Sea / 11. Rough River, Placid Sea / 12. Pascha / 13. Snowpiercer / 14. Toilet Blues / 15. 3x3D / 16. Ticket / 17. Chunhyangjeon (춘향뎐) / 18. Concrete Clouds / 19. 1001 Apples / 20. That Thing You Love / 21. Seopyeonje (서편제) / 22. The General / 23. Kaebyeok (개벽)

Genuine discoveries I made at the festival: L’étrange couleur des larmes de ton corps (2013) by Forzani/Cattet, and The General (1998) by J. Boorman. Stephen Brown’s The Sea was mysterious and engaging, but I couldn’t afford a second-viewing because of my already packed schedule.

My write-up below couldn’t be put into my Senses of Cinema coverage because it’s basically a rant. Read if you’re bored and having nothing else to 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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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spite of my determination to watch films not screened at other festivals already, I had to bend my rule to make room for two films as they were unlikely to receive a wide-release in Korea–Abdellatif Kechiche’s Palme d’Or-winning La Vie d’Adèle (the film’s English title being Blue Is the Warmest Color, a rare case in which the translated title is far more fitting than the original), and the experimental omnibus feature 3x3D. I first heard about Kechiche’s film a few weeks prior to its Cannes screening, and ever since then I somehow managed to dodge incoming words and rumors about the film. For readers who have not seen it yet, let me simply mention that it is well-worth watching the film in its uncut version without preconditioned judgments. This tour de force in cinéma vérité, beginning and ending with the enchanting sound of the hang drum, plunges the viewer into the life of Adèle, played by the eponymous actress Adèle Exarchopoulos. As implied by its English title, there is a gradation of blue in almost every frame of this film: smoke in a mass demonstration, strobe lights in a nightclub, the surface of the ocean, the wallpapers in Adèle’s room, and, of course, the hair of Emma, played by Léa Seydoux. These gradations of blue constitute the wide range of emotions running through Kechiche’s film. And the much-talked about explicit sex scenes, which I was blissfully unaware of before watching the film, have their firm place within the film, and I suspect that one reason why these scenes have produced unease among some viewers (other than the simple fact that it is a male director standing behind the camera) is that they tread an ambiguous line between mythic and realistic representations of sex. That is all I can say for now, but I hope that the film finds more viewers without being harangued by critics’ ra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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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x3D, a collection of three short films commissioned by the Portuguese city Guimarães, was one of the more challenging and exciting films in the festival selection. In 3x3D, Peter Greenaway, Edgar Pêra, and Jean-Luc Godard each provide a short reflection on what 3D can do for cinema. Greenaway takes the viewer on a tour of Guimaraes (“Just In Time”) and Pêra delivers a hilarious segment on the history of cinematic spectatorship (“Cinesapiens”). Godard’s “Les trois desastres,” which comes last in this omnibus feature, was, if considered solely by itself, the least memorable. It should not surprise anyone that Godard laments both digital and 3D cinema. But filmgoers should expect nothing else from Godard who is now more than just a filmmaker; he represents one of the most important moral and political voices in the history of cinema, whipping filmgoers and filmmakers alike with his lacerating works that never give into ideological or aesthetic compromises. Only when his short segment is considered as an extension of his Histoire(s) du cinema does it gain its true signific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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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film that caught me by surprise was The Strange Color of Your Body’s Tears (L’étrange couleur des larmes de ton corps), whose intriguing title, as well as a clip from the directors’ previous work Amer, persuaded me to make room for it in my schedule. A maddeningly jolting, ambitious, phantasmagoric, and erotic work co-directed by Hélène Cattet and Bruno Forzani, the film follows a very minimal plot: a man, Dan Christensen, finds that his wife has disappeared all of a sudden and attempts to discover the truth behind the mystery. Christensen soon finds himself taking on a long-winded journey through a mysterious apartment, a living organism housing bizarre contraptions and sketchy tenants. A variety of literary, cinematic (most notably the Italian giallo tradition, characterized by its stylistic excess and violence), and other influences lurk within the film. In particular, scenes of surveillance, obscure dialogues, mysterious phone calls from a creepy old lady, unexplained torture, Christensen’s seemingly futile journey to find “a certain Laura,” and female sexual awakening all reminded me of Kafka’s best works. But I should emphasize that the parallel is a loose one, Kafka’s landscape being distinct from the filmmaking duo’s in its heightened sensual quality–the smell of cigarette smoke, the sound of flesh being pierced, the touch of glass shards on a bare-naked body, and the sight of an absurd world seen through a kaleidoscopic camera. Inevitably, more than a few viewers will find the work too indulgent. A local critic writing for the BIFF’s daily magazine found the work both completely lacking in structure and excessive in its surrealist images, concluding that it is only interesting as an heir to the giallo tradition (Review Daily No. 3). Suffice it to say that it is a rather unfair criticism in several ways, as the film does indeed have an overall structure and rhythm that becomes arrested and punctured by fascinating interruptions. In fact, the film oscillates between different modes and tones–narrative/non-narrative, pleasure/pain, dream/reality, comic/serious–and it is the unease created by this oscillation that I found completely absorbing. Will the film reach a wider audience other than the usual arthouse and midnight-film crowds? I find it difficult to stifle my hopelessly naive answer–only time will tell.

For the full coverage on Senses of Cinema, here. Mer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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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 무기 감시 기구가 노벨상 수상 (NYT)

Urging the destruction of an “entire category” of unconventional weapons, the Norwegian Nobel Committee awarded its 2013 Peace Prize on Friday to a modest and little-known United Nations-backed organization that has drawn sudden attention with a mission to ensure that Syria’s stocks of chemical arms are eradicated.

노르웨이의 노벨상 위원회는 금요일 모든 비재래식 무기의 폐기를 강조하며2013년 노벨 평화상을 크지 않고 잘 알려지지 않은 UN 산하 기관에 수여했다. 시리아의 화학 무기 비축분을 폐기시키려는 임무를 지닌 이 기관은 노벨 평화상 수상으로 인해 주변의 관심을 끌고 있다.

The award, to the Organization for the Prohibition of Chemical Weapons, surprised some Nobel watchers partly because of the unprecedented nature of its current task: overseeing the destruction of a previously secret chemical weapons program quickly amid a raging civil war.

노벨상 수상에 대해 예의주시하고 있는 자들은 화학무기금지기구의 수상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 부분적인 이유는 이 기구가 심화되고 있는 내전 속에서 베일 속에 감쳐져있던 화학 무기 프로그램의 폐기라는 전례 없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We were aware that our work silently but surely was contributing to peace in the world,” Ahmet Uzumcu, the director general of the organization, told reporters at its headquarters in The Hague after the award was announced. “The last few weeks have brought this to the fore. The entire international community has been made aware of our work.”

노벨 평화상 수상이 발표된 후 아흐메트 우줌쿠 OPCW 사무총장은OPCW의 본부가 위치해 있는 헤이그에서 “우리는 묵묵히 작업을 해왔지만, 세계 평화에 확실히 기여하고 있는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그는 이어 “지난 몇 주간 우리의 작업이 전면부로 나타났다. 국제 사회 전체가 우리의 작업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Among diplomats, the prize was seen as the high point of a startling rise to prominence for an organization that had worked in relative obscurity. Some Syrians, however, took strong exception to the idea of lauding chemical weapons watchdogs when the bulk of the more than 100,000 deaths in Syria’s 31-month-old conflict have been caused by conventional weapons, like airstrikes and artillery and rocket fire.

외교가에서는 OPCW의 수상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OPCW가 일약 명성을 얻게 된 과정이 절정에 달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몇몇 시리아인들은31개월 간 지속된 시리아 내전에서 십만명 이상의 사망자 다수가 공습, 포격, 그리고 로켓 발사 같은 재래식 무기로 인하여 발생한 것을 감안하며, 화학 무기 감시 기구인 OPCW에 영예를 준 것에 대해 강한 반감을 보였다.

Despite the urgency and danger of its task, the organization had not been seen as a likely winner. In the days leading up to the award, much attention was focused on individual candidates, including Malala Yousafzai, the 16-year-old Pakistani who risked her life to campaign for girls’ education and would have been the youngest recipient ever.

OPCW는 수행 중인 임무의 중요성과 위험에도 불구하고 유력 후보자로 보여지지 않았었다. 수상 발표 날까지 많은 사람들은 개인 후보들에게 주의를 기울였었다. 그 중에는 소녀들의 교육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생명의 위협을 무릅썼었고 최연소 수상자가 됐을 뻔한 16살 파키스탄 소녀 말라라 유사프자이가 포함되어 있었다.

In its citation, the committee said the organization and the treaty under which it was founded in 1997 “have defined the use of chemical weapons as a taboo under international law.”

수상 발표문에 노벨상 위원회는 OPCW와 이 기관의 설립 근거가 된 1997년 화학무기금지협약이 “국제법 아래 화학 무기의 사용을 금지하였다”고 발표했다.

“Recent events in Syria, where chemical weapons have again been put to use, have underlined the need to enhance the efforts to do away with such weapons,” the citation said.

이어서 발표문은 “또다시 화학무기가 사용되고 있는 시리아에서의 최근 사건들은 화학무기들을 폐기하는 노력의 강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It was the second successive year that the panel, based in Oslo, had chosen an organization. The European Union won the 2012 prize.

작년에 이어 두 번째 연속으로 노벨상 위원회가 특정 기구를 대상으로 평화상을 수여한 것이다. EU는 2012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었다.

Source:

Cowell, Alan. “Chemical Weapons Watchdog Wins Nobel Peace Prize.” <http://www.nytimes.com/2013/10/12/world/chemical-weapons-watchdog-wins-nobel-peace-prize.html?adxnnl=1&adxnnlx=1381993132-Bbsqst+ekMXYNFChGZrC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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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North Korean Memoir Tests South’s Interest in Refugee Stories

At the height of North Korea’s famine during the 1990s, Kim Eun-ju recalls going for so long without food that, fearing death, she sat down and wrote out her will. Ms. Kim was 11 years old. Now a 27-year-old university student in Seoul, Ms. Kim faces a different challenge: getting the busy Koreans around her to care more about those in the North. Ms. Kim doesn’t begrudge South Koreans their economic success. Indeed, Ms. Kim says she can get so busy building a prosperous new life for herself that she too finds herself tuning out the headlines from North Korea. But with the Korean-language release of her memoir this week, Ms. Kim will test South Korea’s appetite for gritty, often disturbing stories from its northern neighbor.

1990년도 북한의 기난이 극에 달하고 있을 때의 시절을 떠올린 김은주 씨는 그 때 당시 너무 오래동안 먹지 못하여 죽음의 두려움이 엄습한 나머지 자리에 앉아 유서를 썼다고 한다. 그 당시 김 씨는 11살이었다. 현재 27살 서울에서 대학에 재학 중인 김씨는 또다른 숙제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쁜 생활을 하는 남한 사람들이 북한 사람들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만드는 일이다. 김 씨는 남한 사람들의 경제적 성공에 대해 자격지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 오히려 김 씨는 자신의 부유하고 새로운 삶을 영위하는 일에 바빠 북한에 대한  헤드라인 뉴스에 주위를 기울이지 못할 정도이다. 하지만 이번 주 그의 회고록이 한국어로 출시 되었는데, 김 씨는 이웃 나라 북한의 껄끄럽고 여기 저기서 충격을 받을 수 있는 이야기들로 남한 사람들의 관심을 시험할 것이다.

 

Source:

Cheng, Jonathan. “New North Korean Memoir Tests South’s Interest in Refugee Stories.” <http://blogs.wsj.com/korearealtime/2013/10/11/new-north-korean-memoir-tests-souths-interest-in-refugee-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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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cerpt] The Aesthetic of Active Boredom in Nam June Paik’s Zen for Film (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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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 June Paik’s Zen for Film in 2011 at the Paik Art Center in Gyeonggi-do

An old 16 mm film projector runs in front of a blank wall onto which it projects a screen of light, appearing all the more luminous as it makes a contrast to the whiteness of the adjacent museum walls. Small enough to be covered in shadow and disappear if one were to stand in front of the projector, the blank, luminous screen nonetheless creates an intimate space around it, forming a miniature version of a movie theater. About fourteen minutes in length, the film that produces the screen is completely blank. No visual figurations appear on the screen except for the flickering presence of almost invisible shades, produced by tiny specks of dust and scratches on the film strip. No soundtrack accompanies this blank film strip. Infiltrating the viewing space are only the surrounding humdrum of museum activities, accompanied by the quietly reeling sound of the projector, almost timid in nature when compared to that of a larger commercial projector. When the film is over, it begins all over again.

[...]

Paik’s Zen for Film, a minimalist work first shown in 1964 at Filmmakers’ Cinematheque in New York, seems like the most uncharacteristic among Paik’s oeuvre for its lack of representational experimentations on the visual screen. Zen for Film consists of three formal elements: the projector, the blank screen, the surrounding space. Neither frenetic collage-videos nor aural noise, elements which stand out in many of Paik’s works from the entire span of his artistic career, appear in Zen for Film. In place of image quotations from various sources, a Paikian practice, is a curiously blank screen. Looking at the blank screen, the viewer makes at least two interpretations. First, the blank screen negates visual representation altogether, either coherent or incoherent, positioning itself against the figurative image as a useful form of representation. Second, it represents non-representation itself, constructing a new kind of image that requires a new kind of gaze by the viewer. Regardless of which interpretation the viewer finds more compelling in the end, one can be certain about one effect that Zen for Film creates: it invites the audience to raise various issues with the problem of visual representation in the arts, namely the question of whether experimentations with visual language have been exhausted in the modern arts, and whether it is necessary for artists to invent a new kind of visual representation altogether. Indeed, Paik, throughout his oeuvre, relentlessly pursues this issue by adopting new visual methods that reflect changes in modern technology. For Paik, postmodernism’s lament of the depletion of new forms of expression seemed to have been irrelevant. There were infinitely new possibilities in creating new ways of expressing, not merely by combining past formal strategies and actually inventing one, a hope that he harbored with his invention of a video synthesizer with the Japanese technician Shuya Abe:

This [the Paik/Abe Synthesizer] will enable us to shape the TV screen canvas
as precisely as Leonardo
as freely as Picasso
as colorfully as Renoir
as profoundly as Mondrian
as violently as Pollock and
as lyrically as Jasper Johns.[1]

Even in this brief quote, one has a strong sense that Paik did not harbor an apocalyptic attitude towards visual representation in the contemporary arts. Visuality was something to be embraced, not negated, in Paik’s oeuvre. Even though Paik’s Zen for Film appears to assume a detached position from his other works, it in fact remains closely connected to them by problematizing visual representation.

But at least two characteristics of Zen for Film make it distinct from other works by Paik: the ambiguity of its own very nature, and the uncertainty of the subject in experiencing it. When one first encounters Zen for Film, the first issue that arises is a basic interpretive one: through which artistic category or genre should we experience the work? One is uncertain as to what the primary object of one’s attention should be—is it the screen, the projector, the reeling sound of the film, or the whole installation site? The nature of Paik’s work and, correspondingly, the audience’s experience of it seem to remain insoluble. Does one experience Zen for Film as an installation work, a highly experimental work of cinéma du pauvre,[2] or both at once? In experiencing Zen for Film, is the viewer situated as a detached subject who can step outside the boundaries of the work, or is the viewer situated as an immersed subject subsumed under the film apparatus, akin to a conventional cinematic experience? Or, as incredible as it may sound, is the viewer completely left out of the picture altogether, the work itself forming its own hermetic relationship as suggested by the self-referential title of the work? Such lack of certainty as to the nature of Zen for Film and to the position of the subject are not so much riddles to be solved as the work’s important aesthetic qualities. Further, these ambiguities give rise to a particular state of mind, namely “active” boredom, that allows the viewer to attain a new kind of subjectivity in experiencing Paik’s work.

[...]


[1] The quote comes from the Nam June Paik Art Center’s website: http://www.njpartcenter.kr/en/njpaik/sayings.asp

[2] Herman Asselberghs uses the term “cinéma du pauvre” to describe Paik’s Zen for FilmZen for Film is not about the metaphysical void or the Euro-American sublime, nor about the Big Nothing. Instead, it’s about the next-to-nothing. It’s Jeanne Dielman leading her compulsive life, in which nothing ever happens, in real time […] Zen for Film is about the refusal to please an audience the easy way. It’s about deploying an anti-spectacle of poor aesthetics, stressing the enchanted materialism of people, thing and (cinematic) time itself. A nothing film made of nothing about ‘nothing’—exquisite cinéma du pauvre” (15).

For the full text, 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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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먼이 방북에 대해 상세히 설명 (Rodman Gives Details on Trip to North Korea)

The retired N.B.A. star Dennis Rodman said Monday that on his visit to North Korea last week, the country’s leader, Kim Jong-un, trusted him enough to let him hold his baby daughter and asked him to bring a team of former basketball stars for games in Pyongyang and train the North’s basketball team for the next Olympics.

은퇴한 NBA 선수 데니스 로드먼이 월요일 그의 지난 주 방북 시 북한 지도자 김정은 최고 위원장이 자신의 딸을 안게 해줄 정도로 자신을 신뢰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리고 김정은 위원장은 로드먼에게 전직 농구 선수들을 데려와 다음 올림픽 경기를 위해 북한 팀을 훈련시켜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전했다.

Mr. Rodman, who had visited Pyongyang once before at the invitation of Mr. Kim, thus solved one mystery about the North Korean leader. Although Mr. Kim’s wife, Ri Sol-ju, was seen pregnant on the North’s state-run television last year, no outsider had reported having seen the baby, much less holding it. In an interview with The Guardian on Sunday, Mr. Rodman called Mr. Kim’s baby “Ju-ae.”

김 위원장의 초청으로 이미 예전 한 번 방북한 로드먼 씨는 김 위원장에 대한 한 가지 미스터리를 풀게 되었다. 작년 국가 운영 텔레비전 방송에서 김 위원장의 아내 이설주 씨가 임신한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아직까지 외부인이 이설주 씨의 딸을 본 적도, 더군다나 안아본 적도 없다. 로드먼 씨는 가디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 딸의 이름이 “주애”라고 전했다.

Speaking at a news conference arranged in New York on Monday by Paddy Power, an Irish betting company that helped finance his trip to Pyongyang, Mr. Rodman also revealed that Mr. Kim was 30 years old and that his birthday was Jan. 8. The age and birthday conform with what South Korean intelligence officials have said.

로드먼 씨의 방북을 지원해 준 아일랜드의 도박 회사인 패디 파워가 월요일 뉴욕에서 개최한 뉴스 회의에서 김 위원장이 30살이고 생일이 1월 8일이라는 사실이 로드먼 씨에 의해 밝혀졌다. 밝혀진 연령과 생일은 남한 정보 관계자들이 발표한 것과 일치한다.

Mr. Kim and Mr. Rodman have forged an odd friendship since the flamboyant N.B.A. legend made his first trip to Pyongyang in February. During that visit, Mr. Kim threw parties for him, and they watched a basketball game together. Mr. Rodman has since publicly professed his affection for his “friend,” Mr. Kim.

화려한 전설의 농구 선수 로드먼 씨는 2월 처음으로 방북한 후 김 위원장과 특이한 우정을 쌓아왔다. 로드먼 씨가 처음 방북 시 김 위원장은 그를 위해 파티를 열었고 함께 농구 경기를 봤다. 이후 로드먼 씨는 그의 ‘친구’ 김 위원장에 대한 호감을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On Monday, Mr. Rodman said Mr. Kim gave him the right to write a book about him.

로드먼 씨는 월요일 자신에게 김 위원장이 자서전을 쓸 권리를 넘겨줬다고 말했다.

“If you meet the marshal over there, he is a very good guy,” Mr. Rodman said, using the military title for Mr. Kim. “He doesn’t want a war.”

로드먼 씨는 “‘원수’를 직접 만나면 상당히 괜찮은 사람이란 것을 알 수 있다”고 김 위원장에 대한 군사적 호칭을 쓰며 전했다. 그리고 그는 “‘원수’는 전쟁을 원치 않는다”고 전했다.

“If he wanted to bomb anyone in the world, he would have done it,” he said, apparently referring to Pyongyang’s recent moves to ease tensions after months of threats this year.

그는 올해 몇 달 간의 위협으로 인해 고조된 긴장감을 완화시키려는 북한의 최근 동향을 염두하며 “그가 이 세상 누군가를 폭격하고 싶었다면 이미 그랬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Mr. Rodman said he would put together a team of 12 former N.B.A. stars to travel to Pyongyang in January for one week. He said he hoped to recruit people like his former Chicago Bulls teammate Scottie Pippen and Karl Malone. They will play a North Korean team on Jan. 8 and another game two days later, he said. Mr. Kim promised a stadium and 95,000 fans.

로드먼 씨는 오는 1월 일주일 간 방북하게 될 12인 NBA 선수단을 집결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카고 불스 (Chicago Bulls) 팀 전직 동료 선수 피펜 씨와 말론 씨를 팀에 모집할 의향이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 팀이 1월 8일 북한 팀과 경기를 치루고, 이틀 후 다시 또다른 경기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김 위원장은 로드먼 씨에게 경기장과 95,000명의 응원단을 약속했다.

Mr. Rodman said he planned to travel to Pyongyang in December to help select and prepare a North Korean team. A second set of games between the teams will be played in June in Europe, according to an agreement between the North Korean minister of sports and Mr. Rodman that was read during the news conference on Monday.

로드먼 씨는 12월 방북하여 북한 팀의 선발과 훈련을 도와줄 것이라고 밝혔다. 월요일 뉴스 회의에서 발표된 스포츠경기부와 로드먼 씨 사이의 협약에 따르면 유럽에서 6월 로드먼 씨의 팀과 북한 팀 사이에 두 번째 경기가 펼쳐질 것이라고 한다.

Mr. Rodman said he accepted Mr. Kim’s request for him to train the North’s Olympic basketball team.

Critics have called Mr. Rodman’s Pyongyang trips nothing but publicity stunts for both him and Mr. Kim, a brutal dictator whose labor camps are believed to hold tens of thousands of political prisoners. But Mr. Rodman said on Monday that his basketball diplomacy was to “open doors” and “bridge a gap.”

로드먼 씨는 북한의 올림픽 농구 팀을 훈련시켜 달라는 김 위원장의 요청을 수락했다고 밝혔다.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는 자들은 로드먼 씨의 방북이 김 위원장과 그를 위한 ‘선전 활동’에 불과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가혹한 독재자인 김 위원장의 강제 수용소들에는 수 만명의 정치 수감자들이 있다. 하지만 로드먼 씨는 월요일 그의 ‘농구 외교’는 문이 열려 있는 외교이자, 차이를 좁히는 외교라고 말했다.

He criticized President Obama for not talking to Mr. Kim. Speaking of his “inside track” with Mr. Kim, he also challenged Mr. Obama to go to talk to him.

“Even give him a call, that’s all he wants,” Mr. Rodman said, adding that Mr. Kim wanted to “change” and wanted conversations with Washington. “We are not a bad country,” he quoted Mr. Kim as saying.

Mr. Rodman said he was not trying to use his friendship with Mr. Kim to win the release of Kenneth Bae, an American missionary imprisoned in the country for “hostile acts.”

“If you want this guy to be released, why don’t you ask Obama?” he said.

로드먼 씨는 오바마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 대화를 하지 않는 것에 대해 비판을 했다. 그는 김 위원장과의 ‘긴밀한 관계’를 언급하며, 오바마 대통령이 연락을 취할 것을 요구했다.

로드먼 씨는 “전화 한 통이면 돼요. 그가 원하는 건 그 뿐입니다”라고 말하며, 김 위원장은 ‘변화,’ 그리고 미 정부와의 대화를 원한다고 전했다. 로드먼 씨는 김 위원장의 말을 빌려 “북한은 나쁜 나라가 아닙니다”라고 전했다.

로드먼 씨는 김 위원장과의 우정을 현재 북한에서 ‘적대 행위’라는 죄로 수감되어 있는 미국 선교사 케네스 배를 석방시키기 위해 이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그 사람이 석방되길 원하면 나 말고 오바마 대통령에게 물어보세요”라고 말했다.

출처: “Rodman Gives Details on Trip to North Korea” (Choe Sang-hun, Christine Hauser)

http://www.nytimes.com/2013/09/10/world/asia/rodman-gives-details-on-trip-to-north-korea.html?_r=0&pagewanted=pr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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